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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준 문화시계] ⑤ '금수저'의 의무와 품격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당 이회영 형제



최근 우리 사회에 대기업 오너들의 '갑질'이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며 소위 '금수저'의 도덕성과 품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지도층의 윤리의식이 논란을 빚을 때마다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초기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보인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이르는 말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라는 뜻의 프랑스 표현이다. 지도층으로 정당하게 대접받으려면 그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사회적 규범이다.

■ 프랑스 칼레 시민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불리주'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을 치를 당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작은도시 칼레항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어 마침내 칼레시를 항복시킨다.

그러나 칼레시 때문에 고생이 심했던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시민 6명을 뽑아 목에 밧줄을 메고 처형대 앞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죽음 앞에서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때 칼레에서 제일 큰 부자인 외슈타드 생 피에르라는 사람이 선듯 앞으로 나섰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곧바로 뒤를 이어 시장, 법률가, 부자상인, 귀족들이 자신들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자원해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모두가 칼레시의 지도층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자원한 인원이 일곱 명이나 되자 시민들은 제비뽑기를 해서 한 사람을 빼자고 논의했다. 그러나 생 피에르는 처형일인 다음날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제외하자고 했다.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다음날 날이 밝은 처형장에는 여섯 명만이 나오고 한사람이 오지 않았다. 

바로 생 피에르였다 모두가 허탈해 하고 있을 때 생피에르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곱 명의 자원자 중에 혹시라도 마음이 돌아설 사람이 있을지 모를 것을 염려해 그는 먼저 스스로 자결을 한 것이다.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당 이회영과 여섯 형제들

이렇게 프랑스 칼레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의인들이 있다면 한국에도 이를 실천한 여섯의 의인이 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여섯 형제들이다.

그들은, 백사 이항복을 중시조로 열명의 재상을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조판서 이유승의 아들들이다.

이회영은 넷 째 아들로, 위로는 건영, 석영, 철영 세 형이 있었고, 아래로 시영과 호영 두 동생이 있었다. 이들 형제들은 명예와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진, 요즘 말 그대로 최상위 '황금수저'였다.

이들은 나라가 망하자 넷째 이회영의 발의에 한마디 반론도 없이 그들의 어마어마한 재산 모두를 처분하고 1910년 12월 그나마 독립운동이 가능했던 만주로 향했다.

압록강을 건널 때 이회영은 뱃사공에게 배 삵의 두배를 건네며 훗날 독립투사들이 쫒겨 배를 타려고 할 때 꼭 태워주라고 부탁했고 뱃사공도 이때의 약속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독립투사들 간에 전하기도 했다.

만주에 도착한 이들은 1911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다. 숙식은 물론이고 피복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됐다. 이 모든 것이 여섯 형제의 재산에서 충당됐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약 3500 여명의 무장독립투사들을 길러냈다.

1회 학생은 이회영의 아들 이규학(국회의원 이종찬의 부친), 변영태, 김훈, 김도태, 이범석, 오광선 등이다. 

'아리랑'의 저자인 김산도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며 배출된 인재들은 독립군의 근간이 되어 김좌진의 청산리전투,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무관학교는 하루 한끼도 먹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1920년 폐교에 이르렀다. 그들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회영은 아나키스트가 주축이된 의열단을 후원했다. 전지현, 하정우, 조진웅이 출연한 영화 '암살'이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 이상재 선생 "한국은 우당 집안에 큰 빚을 졌다"

모진 시련속에서도 자신들을 돌보지 않은 채 독립만을 위해 애를 썼던 여섯 형제들 중 다섯 명이 불행히도 병사하거나 굶어죽거나 행려상태로 객사한 것으로 전한다. 

이회영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2년 11월 17일 만주 뤼순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들의 반발이 두려워 선생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했으나 이후 거짓으로 들어났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한국은 우당 집안에 큰 빚을 졌다”며 우당 형제들의 용기와 희생에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 오너들의 '갑질'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직원에게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가 하면 회장이 귀국할 때 여승무원들이 도열해서 백허그를 해줘야 했다고 한다. 

이러한 항공사 오너들의 갑질 외에도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후려치기,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한 비용·물량 떠넘기기 등 갑질 행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부와 높은 지위를 선듯 내려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던 우당 형제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또 다른 우당 형제들이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갑과 을이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함께 걸어 나가기를, 아니 '갑·을'이라는 용어도 개념도 사라진 우리 사회를 간절히 기대한다. 

▲ 영화 '암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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