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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ㆍ칼럼

[유태준 문화시계] ② 고종의 슬픔ㆍ한국최초 커피숍

커피 매니아 고종, 손탁 여사에 커피숍 선물



요즘 젊은이들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줄 모르겠지만 과거 젊은이들 사이에 "연인과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라는 전설아닌 전설이 있었다. 

꼭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소중한 연인이라면 굳이 그 길을 피해 데이트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떠나갔지만...

덕수궁 돌담길부터 경향신문사까지 나있는 정동길을 걷다 보면 그시절 추억이 아니더라도 왠지 아련한 서글픔이 밀려 오곤 하는 데 그곳에 구한말 유적이 많기 때문이라고 나름 이유를 대 본다.

덕수궁 자체가 기울어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보려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조가 있던 곳이고, 덕수궁을 둘러 싸고 위치한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대사관, 프란치스코 수도원, 정동교회 등이 모두 대한제국의 몰락과 관련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도 잔잔한 흥미와 슬픔을 전한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애호하던, 당시 양탕국이라 불리던 커피와 러시아 공사의 처형(妻兄)인 손탁여사가 개점해 운영하던 손탁호텔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다. 

■ 러시아 공사의 처형 손탁여사, 고종황제의 바리스타가 되다 

이야기는 서양인들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 오기 시작한 188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1885년 조선에 부임한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베베르는 처와 처형인 안토이네테 손탁(Antoinette Sontag)과 함께 조선에 입국한다. 손탁은 프랑스계 독일인으로 당시 나이 32세이며 입국한 후 조선발음인 손탁으로 불리게 됐다. 

손탁여사는 베베르 부부의 추천으로 궁궐에서 양식조리와 외빈접대를 담당하게 된다. 당시 정치적으로 일본의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반일 성향의 명성황후의 눈에 들었고 최초로 서양 화장품을 들여와 명성황후에게 진상하기도 한다.

손탁여사는 4개 국어에 능통해 당시 조선으로 몰려드는 열강의 인물들이 모이는 사교계에서 중심적 역할을하며 해외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고종황제에게 알리는 등 고종의 외교정보통 역할을 맡기도 했다.

고종은 명성왕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다음해인 1896년 일본인들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공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을 감행하게 되는데 러시아 공관에서 머무는 1년 여 기간 동안에도 수발을 손탁여사에게 맡길만큼 가까이 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 손탁여사의 주요 업무가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내오던 일이었는데 고종황제는 손탁여사가 타준 커피를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한다. 궁을 떠나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기울어 가는 나라를 지켜보는 고종황제에게 손탁여사는 정성껏 커피를 타주며 그를 위로했으리라.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황제는 외국인들을 접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정동교회옆 정동16번지 418평의 대지에 서양식 호텔을 짓게 했다.

2년간의 공사 끝에 1898년 조선 최초의 서양식호텔 손탁호텔이 완공됐고 고종은 호텔을 손탁여사에게 하사해 대한제국의 영빈관 역활을 하게 했다.

이 호텔의 2층은 객실이고 1층에는 커피숍을 만들어 국내외 귀빈들이 커피를 마시게 했는데 이 커피숍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으로 기록된다.

이 곳에 묶고간 이들중에는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과 ‘말괄량이 앨리스’로 유명한 루즈밸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즈밸트도 있다.

■ 망국의 아픔과 커피...옆에서 황제에게 커피를 타주던 외국인 

이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인 1909년, 손탁여사는 호텔을 프랑스인에게 넘기고 대한제국 황제를 떠나야 했다. 그녀는 이후 러시아를 통해 프랑스 리스로 가 남은 생을 보낸것으로 알려진다.

손탁여사가 23년의 조선생활을 접고 귀국할 당시 조선인 양자를 입적해 데려간 일이 최근 알려졌다. 그 이야기도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소개해 보려 한다.

손탁호텔은 1917년 이화학당이 사들여 기숙사로 사용하다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지고 만다.

고종황제는 특히 커피 애호가로 알려진다. 우리나라 커피 보급과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기록과 문헌이 남아있다. 

마음과 달리 기울어만 가는 조국을 지켜보며, 심리적 압박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선택한 차(茶)가 쓰디쓴 커피였을까.

궁전과 황후까지 잃고 홀로 남의 나라 공관에서 힘들어 하던 고종의 옆에서, 그를 위로하기 위해 커피를 만들어 주던 손탁여사. 그녀의 슬픔과 애틋함도 정동길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애잔함을 불러 일으킨다.

본인은 왠지 정동길을 걸으면, 옛 러시아공관 자리를 지나고 손탁호텔터를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늘 이영훈 작곡가의 '광화문 연가'를 속으로 읊조리곤 한다.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고종황제와 손탁여사, 망국(亡國)과 커피...그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가사와 멜로디인 듯 하다.

▲ '광화문연가' 이영훈 작사작곡/ 이문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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