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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ㆍ칼럼

[역사 완성] 몽골제국② 공포에 질린 유럽과 유럽을 구한 오고타이칸



징기스칸이 상망한 후 칸의 제위를 물려받은 오고타이는 얻을 것이 별로 없는 유럽 정벌을 탐탁치 않아했지만, 전신(戰神) 수부타이 장군의 전 세계 정복이라는 웅대한 포부에 설득돼 유럽 정벌을 시작했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소개했다.

이번 시간에는 그렇게 유럽정벌을 결정한 몽골군의 유럽 진출과 회군, 그리고 당시 유럽인들이 몽골에 어떻게 대항했고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살펴보겠다.

일찍이 징기스칸과 함께 이슬람지역을 유린한 수부타이는 금나라를 정복한 후 징키스칸의 손자인 바투와 함께 유럽정벌에 나섰다. 

한겨울에 총 7000 ㎞에 달하는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했는데 그들의 진격속도는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서 침공 소식 보다 몽골군대가 먼저 도착할 정도였다.

먼저 수부타이는 이슬람 원정 때 한번 공략했던 키에프공국으로 쳐들어갔다. 

20년 전 수부타이의 2만 군대에 유린당했던 키에프공국은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수도가 함락되고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몽골제국은 이 곳에 킵차크한국을 세우고 바투에게 다스리게 했다. 이후 이 지역은 20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된다.

한편 몽골군의 무자비한 살육에 수십만의 피난민들이 헝가리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피나민들이 '지옥의 군대가 왔다'라는 말을 전하자 헝가리는 삽시간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당시 헝가리는 신성로마제국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기에 헝가리 국왕 벨라4세(Bela IV)는 몽골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처에서 몽골군에게 패하고 급기야 보헤미아 지역에서 폴란드와 오스트리아 연합군마저 박살나는 지경에 이르자 헝가리는 물론 전 유럽이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다급해진 벨라4세는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 유럽에 구원을 요청하게된다.

튜튼기사단, 템플기사단, 크로아티아왕국, 신성로마제국등 전 유럽에서 동원된 10만의 군대가 몽골을 막기위해 사요(Sajo) 강변 모히(Mohi) 평원에 집결했다.

이제 유럽의 운명은 이 곳에서의 일전으로 결판나게 되었다. 10만의 유럽군대는 비장한 각오로 몽골군대를 기다렸다.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망라해 전 세계를 휩쓴 몽골군은 전투력만 강한게 아니었다. 

수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갖가지 전술을 익혔고 공성장비 등 각종 전쟁물자와 전투장비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몽골군은 사요강을 건너기 전에 몰래 수 만 명의 기병을 유럽군 측면에 매복시켜 놓았다.

마침내 몽골군이 도강을 하고 모히평원으로 진격했다. 그러자 유럽군은 몽골 진영의 중앙으로 전진하며 몽골군에 대적했다. 그 때 양쪽에 매복하고 있던 수 만의 몽골기병들이 유럽연합군의 측면을 들이쳤다. 

측면 공격을 받게 된 유럽군의 대열은 일순간에 무너지고 아비규환의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후 일방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유럽군은 변변한 전투조차 하지 못하고  도망가기 바빴고 몽골군은 패퇴하는 유럽군을 끝까지 쫒아가서 모조리 전멸시켰다고 전한다.

■ 서유럽의 위기와 오고타이 사망

모히(Mohi)회전이 끝나면서 유럽은 몽골에 저항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군대가 궤멸되었기 때문에 이제 유럽대륙을 지킬수 있는 군대는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몽골군대는 동유럽 전역을 유린하고 오스트리아의 비인까지 진출했다. 이제 신성로마제국이 그들의 다음 먹잇감이었다. 

유럽 전역은 대혼란에 빠지고 동쪽에서 들려오는 '지옥의 군대' 소문은 서부유럽까지 공포로 몰아 넣었다. 왕들과 대공들은 벌벌 떨었고 교황청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었다.

"오~! 하나님 지옥의 군대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소서"

수부타이의 몽골군대에 맞서 서유럽인들이 할수 있는 것 이라고는 구원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전쟁의 신 수부타이는 애초에 장담했던 대로 서쪽 끝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모조리 정복하겠다는 목표달성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그 때 몽골 수도로 부터 긴급문서가 도착했다.

칸인 오고타이가 사망하여 새로운 칸을 선출해야하기 때문에 쿠릴타이를 개최해야 하니 모든 황족들은 전장에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수부타이는 황족인 바투와 함께 본국으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유라시아 땅끝까지 정복하려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이후 몽골군의 유럽침공은 다시 이루어 지지 않았고 서유럽은 칸의 사망이라는 뜻밖의 행운으로인해 몽골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재앙을 면하게 됐다.

아이러니 하게도 유럽을 정벌하라는 명을 내렸던 오고타이 때문에 서유럽은 재앙을 면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고타이는 서유럽인들에게 구원자가 된 셈이었다. 

역사가들은 오고타이의 사망을 '역대급 타이밍'이라 말하기도 한다.

역사에 있어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만약 오고타이가 1년만 더 늦게 세상을 떠났더라면 서유럽의 운명과 이후 세계사의 판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는 이러한 순간이 종종 있다.

만약 알렉산더가 동쪽으로 진출하여 페르시아 등 동방정벌을 하지 않고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로마를 쳤더라면 찬란한 로마문명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명나라 때 정화가 선단을 이끌고 서쪽 진출을 하다 황제의 명으로 중단되었는데, 정화가 계속 서쪽으로 진행해 서양 보다 먼저 대항해시대를 열었더라면 근대 세계의 판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수천년의 세계사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로 한 나라와 민족이 멸망하여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는 가 하면, 사소한 계기가 한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역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만났을 때 
만약 그 때 이랬더라면? 이라고 가정하며 
한번 나름대로 상상해 보는 것도 역사 공부를 하는 또 하나의 재미인 것 같다.


■ 이완성 자유기고가ㆍIT전문가

STX중공업과 아남반도체 근무,

현재 IT컨설턴트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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