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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ㆍ칼럼

[김용대 칼럼] 소산마을과 김상헌의 청원루

충절과 절개의 대명사 청원루(淸遠樓)



경상북도 안동에서 풍산읍을 거쳐 하회마을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하회마을 수km 남긴 시점에 내륙에서 보기드믄 넓은 들판과, 그 너머 7백리 낙동강을 마주하며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은 신라 말 경순왕 때 고창군(현재 안동) 성주이면서, 견훤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어, 그간 수세에 몰려있던 고려의 통일기반을 다지는데 공을 세웠던 김선평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후, 9대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이, 이 곳으로 옮겨오면서(1430년, 세종 12년) 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마을이 안동김씨 집성촌인 소산(素山)마을이다.

이 마을 입구에는, 낙동강과 서예 류성용의 서당 병산서원을 바로보며 자리잡은 정자 하나가 서 있다.  

이 정자는 소산마을 입향조(入鄕祖)인 김삼근(金三近)의 손자 김영전(金永銓) 등 3형제가, 88세 노모의 장수를 비는 효심에서 1495년에 세웠다. 정자 앞 뜰에는, 십장생 중 하나인 거북 모양의 돌이 3개 있어 삼구정(三龜亭)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 효심이 유산으로 작용했을까? 김삼근의 증손자 김번(金璠) 등 후손들의 중앙 정계 진출을 시작으로, 김상용·김상헌 형제와 더불어 그의 손자인 김수항과 증손인 김창집 등 정승배출이 지속되며 안동김씨는 명문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명성을 바탕으로 정조시대 김조순이 등장하며 세도정치 계보로까지 연결된다.

이 계보는 순조시대 이래 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15명, 판서 35명, 대제학 6명, 대장 9명 등의 고관대작 배출이 이어졌다. 이로인해 당시, 세간에서는 순(淳), 근(根), 병(炳)으로 내려오는 안동김씨 항렬 속에, 벼슬하지 않은 이 없다는 말도 떠돌았다 한다.

여기다 23대 순조 비(妃)(김조순의 딸), 24대 헌종 妃(김조근의 딸), 25대 철종 妃(김문근의 딸)를 배출하는 3명의 왕비까지 안동김씨 명성에 가세했다.

이들 세력들은 조선후기 나라를 어지럽힌 집안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실은 조선왕조 사상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 충절과 절의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 충절과 절의의 상징 김상헌,  소산마을 청원루(淸遠樓)로 두 번이나 낙향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충절과 절의의 대명사로 이름을 남긴 청음(淸陰) 김상헌이다.
김상헌이 두 번이나 낙향해 충절의 유산이 남긴 곳도 바로 소산마을이다. 

마을을 들어서면 당시의 절개를 말 해주는 듯, 푸른 하늘을 떠받히며 터 잡고 있는 누각 하나가 서 있다
이 누각이 바로 청음(淸陰) 김상헌이 청나라를 멀리하며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청원루(淸遠樓)이다.

김상헌은 돈령부도정 극효(克孝)의 아들이자, 좌의정 정유길의 외손자이다. 또한, 김상헌은 병자호란 때 성이 함락되자, 문루에서 화약에 불을 질러 순절했던, 충신 우의정 상용(尙容, 1561~1637년)의 동생이기도 하다.

청음은 병자호란 때 배청주의 상징적 인물로 1608년 문과 중시에 합격, 요직에서 승승장구하다 인목대비 父 김제남이 사사(賜死)될 때, 그와 인척(청음의 아들 김광찬이 김제남의 손녀사위) 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어 소산마을로 낙향했다.

이후, 김상헌은 인조반정으로 정계복귀 후, 강직한 성품으로 파직과 좌천을 수차례 반복, 예조판서로 봉직 중에 병자호란(인조 14년)이라는 전쟁을 맞았다.

1636년 청나라 태종은, 임경업이 버틴 백마산성을 돌아 한양으로 곧바로 직진, 도원수 김자점은 무너지고 무능했던 인조와 고관대작들은 결국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날아든 패전소식으로 자칫 몰살당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항복해서 살아남고 보자는 주화파와 끝까지 싸우다 죽자는 척화파가 다투기 시작했다.

이후, 경술년 시련의 극치이자 망국적 상황에서 주화파의 거두였던 이조판서 최명길(1586∼1647)은 일단 살고 보자며 결국, 투항국서를 직접 작성했다(1624년 인조2년).

이 때, 이를 본 척화파의 거두 김상헌이 달려들어 충절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 항복문서를 갈기갈기 찢고 말았다. 그리고는 6일간의 단식과 통곡이 이어졌다.

■ 조선이 항복 후. 김상헌은 청에 끌려가 투옥생활

최명길은 찢긴 항복문서를 다시 붙여 청군에 보냈고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힌 지 47일 만에 출성, 삼전도(현재의 송파나루터 =잠실 석촌호수 서쪽)에서 무릎 꿇고 청나라에 항복해 목숨을 건졌다고 전해진다.

이로서 삼전도에는 청나라 임금을 칭송하는 비가 세워졌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기의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성문이 열리던 날 김상헌은, 벼슬을 버리고 소산마을로 내려가 청원루에 거처하며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랬다. 두번째 낙향 때 그의 나이 68세.

전쟁에서 지고나자, 김상헌과 척화파들은 심양 북관(사형수들만 간다는 감옥)으로 압송됐고, 이후에도 청인의 타협요구도 거절한 체,  의연히 6년간의 투옥생활을 시작했다.

청원루 앞마당에 있는 김상헌의 시비(詩碑). 청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유명한 시다 

이때, 김상헌은 조국을 떠나면서 돌아올 날 기약 없는 서러움을 한 구절 시에 담았다.  그 시비가 현재 청원루 앞마당에 서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항복을 막으려고 몇 차례 투신하고, 목을 매려 했으나 옆에서 막아 순국도 못하고, 단식도 했지만 그것 마져도 뜻대로 되지 않고 감옥살이 했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김상헌은 방환 후,  효종이 하사하는 벼슬과 녹봉도 수차례  마다하고 낙향, 대학자로 존경받으며 후학을 가르치다 8년 뒤(1652년, 83세) 생을 마감 했다. 

김상헌의 직계손자로는 수증·수홍·수항이 있고, 이중 수증은 공조참판을 끝으로 낙향, 수홍은 영의정에, 수항은 44세에 우의정·좌의정에 연달아 올라 현직 형제정승을 기록했다. 

이러한 김상헌의 인품과 절개에다 후손들의  화려한 번성이 더해져, 훗날 후대의 세도정치 오명에도 불구, 名家로 반전되는 기틀을 만들었다.

■ 김상헌의 충절, 다른 권세가와 후손들의 야욕과 대조

오늘날 이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당시 일반 정승들은 잘난 조상 덕에 온갖 권세 누리고 양반행세 하면서 정작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책임은 외면해왔던 행실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근세 일제 국권 침탈이 자행되자 권세가를 자처하던 인물들은, 일제가 내려준 작위와 은사금으로 누렸던 안락과 권세를 후손들에게 영속화 하기위해, 온갖 악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에 동조하며 부역했던 수많은 고관대작들은 사회 곳곳에 역사를 교란시키는 바람에, 우리는 과거청산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 서 있기도 하다.

삼전도의 굴욕이 비록, 백척간두에서 임금을 구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 도 있고, 또 한편 문명국인 조선 국왕이 야만족 청나라에 어찌 항복하느냐며 칼을 받겠다는 절개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는 주어진 시대상황에 따라 역사가 판별할 일일 것이다.

다만, 일본을 도와 나라를 망하게 했던 친일파 5적들이 끼친 폐해들은, 현재도 잔재가 남아있음을 상기해 볼 때, 조선의 다른 정승들이나 현세의 권세가들에게,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면, 김상헌 같은 의연한 충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임진왜란 정란속에서도 나라의 중심을 세우는 일에 말년까지 전심전력했던 서예 류성용 같은 재상을 현세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사심과 당(黨)이 우선인 요즘 여·야당의 극한대립 정치싸움을 보면, 과연 그들에게 본인 이익을 포기할만 한, 강직한 신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의 싸움에서는, 공심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차원으로 이해되는 슬픔은 나에게만 오는 걸까. 새해에는 그것이 기우(杞憂)이고 충절과 공심을 앞세우고 다투는 그러한 싸움이 그리워진다.

■ 필자 김용대 : 사학 전공. 여행가 이며 자유기고가. 
   역사·병서·천문학 분야에 조예가 깊다. 

저자 註, 소산마을은 현재, 청원루 외에도 비안공구택(경북 문화재 제211호), 양소당(경북 민속자료 제 25호), 동야고택, 삼소재, 홍문, 역동재 등 다수의 국가문화재와 古跡들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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