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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ㆍ칼럼

[역사 완성] 코르넬리아의 보석 '그라쿠스 형제'

"그라쿠스의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디딤돌"




기원전 2세기 로마 집정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아내였던 코르넬리아(Cornelia)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티베리우스 그라쿠스(Tiberius Gracchus)이고 둘 째 아들은 가이우스 그라쿠스(Gaius Gracchus) 였다. 코르넬리아는 2차포에니전쟁 자마(Zama)전투에서 카르타고를 격파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의 딸이기도 했다.

코르넬리아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일반적인 로마 여성들과 달리 재혼하지 않은 채 두 아들의 교육에만 온 힘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한다. 그녀는 삶의 모든 것을 두 아들에 걸고 그들을 교육해서 전 로마인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라쿠스 형제들이 아직 어렸던 어느날, 코르넬리아의 집에서 귀부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귀부인들은 얘기를 나누던 중 저마다 자신들이 갖고있는 보석들을 꺼내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인 코르넬리아는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러자 귀부인들은 그녀의 것도 보여달라고 했다.

코르넬리아는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귀부인들은 그녀가 가지고 나올 보석에 큰 기대를 했다. 

잠시 후 그녀는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그녀는 부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이 두 아이가 나의 가장 소중한 보석입니다. 로마 전부를 준다고 해도 결코 바꿀수 없는 나의 가장 귀한 보석입니다"

두 아들은 그녀의 바램대로 잘 성장해 주었고 로마에서 그라쿠스 형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생기고 유능한 청년이 되었다.

첫 째인 티베리우스가 아직 젋었을 때의 한 가지 에피소드.

당시 원로원의 일인자가 청년 티베리우스를 눈여겨 보고 마음속으로 딸의 짝으로 결정하고는 집에 돌아와서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우리 클라우디아의 약혼자를 정했소"
그러자 아내는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딸의 약혼자를 정했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서 남편에게 대꾸했다.
"뭐가 그리 호들갑이요~? 티베리우스라면 몰라도.."라며 투덜댔다.
하지만 남편의 입에서 티베리우스라는 이름이 나오고 그녀는 곧바로 남편에게 맞장구를 치며 환하게 웃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당시 로마에서 딸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티베리우스를 사윗감으로 삼고 싶어할 정도로 티베리우스의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 로마시민을 위한 기득권과의 전쟁 

큰 아들 티베리우스는 마침내 호민관(護民官)이 되었다. 고대 로마에서 호민관 제도는 원로원의 귀족 계급에 대항하여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그 당시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에 승리한 후 전성기를 누렸지만 정작 로마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거듭된 전쟁으로 전투에 참여하게 된 농민들은 농장이 황폐되었고 어렵사리 농사를 지어도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값 싼 곡식들때문에 자영농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농민들은 결국 이농(離農)하여 도시의 빈민이 되거나 노예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어갔다. 

로마의 근간이 되는 시민들이 몰락하고, 유력자들이 소유한 대규모 농장 라티푼디움이 등장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한층 가속화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이러한 로마의 구조적인 모순을 극복하고자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특정인이 일정 수준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그 수준 이상의 토지는 가난한 농민에게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로원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거셌다. 결국 티베리우스는 반대세력들에게 쇠몽둥이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만다. 코르넬리아의 보석 하나가 사라진 것이었다.

동생인 가이우스는 처음에는 정치에 별 뜻이 없었다. 하지만 꿈에 형 티베리우스가 나타나 두 형제의 운명에 대해 얘기를 했다고 전한다.  

그후 가이우스는 그들 형제의 운명은 정해졌고,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가이우스는 호민관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로마시민들에게 그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가이우스는 형이 못다 이룬 개혁을 추진했다.  빈민들에게 국유지를 분배하여 자영농으로 육성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개혁법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가이우스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원로원과 그의 개혁이 급진적이라며 못마땅하게 생각한 보수적인 귀족들로부터 거센 반격을 당하고 만다.

반대세력의 공격으로 가이우스의 추종세력 3천여 명이 처형되고 가이우스는 참수되어 두개골에 납이 부어졌다. 코르넬리아의 마지막 보석도 사라진 것이다.

코르넬리아는 두 아들을 잃은 후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은둔하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두 아들을 묻은 그녀의 가슴 속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에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는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두 형제들의 개혁은 좌절 되었지만 60년 뒤, 로마의 영원한 영웅인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에 의해 그라쿠스의 토지개격은 마침내 실행에 옮겨지게 되고 로마의 정식 제도로 정착된다.

과거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보아왔듯이 역사는 변화한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를 향한 열망의 반대편에는 늘 변화를 원치 않는 세력의 반발도 거세다. 그리고 이때문에 변화는 수 없이 실패를 맛보곤 한다.

그라쿠스 형제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도 그들의 시대에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변화와 진보를 향한 디딤돌이 되었다. 변혁의 물결을 가로막는 기득권의 둑을 터뜨리고 어려움을 겪는 평민들을 지키고자 했던 로마의 '고결한 양심'이었다.


■ 이완성 자유기고가ㆍIT전문가

STX중공업과 아남반도체 근무,
현재 IT컨설턴트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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