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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출은 사양합니다” 폐기물 식민주의 공범 된 한국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가는 ‘보이지 않는 쓰레기’
국제 협약 속에서도 계속되는 폐기물 수출 논란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편리함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현대 문명은 필연적으로 폐기물 남발이라는 숙제를 떠안게 되어있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매립과 소각, 분리수거와 재활용 등의 해결책을 들고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국 내 처리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상당수 국가들이 채택한 방법은 재활용이라는 이름 아래 폐기물을 수출하는 것이다. 얼핏 자원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방안이 실질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환경과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 사회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폐기물 식민주의’라 불리는 이 관행은,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 내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폐기물을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떠넘기는 구조를 말한다.  이는 과거의 식민주의처럼 자원을 착취하고 피해를 외부화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행렬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이다. 


◆ 폐기물 수출은 환경 문제 아닌 사회 정의의 문제

한때 세계 최대의 폐기물 수입국으로 치부되던 중국이 2018년,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발효한 이후 흐름이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이 환경오염과 국민 건강 문제를 이유로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자 갈 곳을 잃은 폐기물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가나, 멕시코, 페루 등으로 이동한 것. 특히 말레이시아는 2023년 기준 세계 최대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국으로 기록되었으며, 수입된 폐기물의 상당수가 불법 소각되거나 방치되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를 단순한 환경 문제의 차원에서 바라보기도 하지만 사실 이는 사회 정의의 문제에 가깝다. 이러한 관행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빈곤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수출되는 폐기물의 유형에 따라 수혜국의 질병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한층 커진다. 이는 가난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의 과잉 소비와 선진 산업의 투기장으로 취급되는 식민지 시대의 착취를 반복하는 일이다. 


오천년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착취의 대상이었던 한국이 아이러니하게도 착취의 주체가 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이 공공데이터포털에 등록한 ‘최근 10년간 폐기물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한 해 동안 약 9만 톤의 폐합성고분자화합물(폐플라스틱)을 수출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중고 의류 역시 대량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입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폐기물은 ‘재활용품’이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지만, 실제로는 오염된 플라스틱이나 재활용이 불가능한 혼합 폐기물인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이들 폐기물은 종종 재활용이 아닌 매립이나 소각 처리되며, 수입국의 환경과 주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 사회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시행 중인 이유다. 단일 재질이 아닌 폐플라스틱은 수입국의 사전 동의 없이는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중요한 건 그 규약이 과연 실효성을 띠고 있냐는 점이다. 환경운동연합은 2023년 11월 보고서에서 “불법 거래와 제도 악용은 여전히 활발하며, 협약의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지적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협약의 허술함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재활용 기록을 조작해 폐기물을 ‘재활용품’으로 위장해 수출한 사례가 드러났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바젤행동네트워크(BAN)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수출된 폐기물이 터키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불법 소각되거나 방치된 채로 발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됨으로써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 즉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외면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 현재의 실상이다. 


◆ 폐기물 식민주의의 공범 안 되려면 재활용 강화해야

이런 악습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자명하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폐기물,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폐기물의 처리가 수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피해를 자국민이 떠안지 않게 하기 위한 고육책이 바로 현재의 폐기물 수출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자국 내에서 원활한 처리가 가능해진다면 이런 관행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뜻이다.


익히 보아왔듯 그것이 쉽지 않음은 당연하다. 자원선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한국 역시 정도만 다를 뿐 이로 인한 고충은 여전하다. 에너지 전문매체 에너지경제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73%로 OECD 평균인 9%보다 월등히 높지만, 이 수치에는 열적 재활용(SRF: 고형연료제품)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물적 재활용률은 27%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가정에서 발생하는 생활계 폐플라스틱의 물적 재활용률은 16.4%에 그친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의 발걸음을 뒤따라갈 요인은 다분하다. 폐기물 식민주의의 행렬에 동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를 회피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방안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한국의 자원순환 정책의 핵심이다. 2003년 도입된 이 제도는 제품 생산자가 폐기물 처리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재활용률 향상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024년 10월 발표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에 따르면,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EPR 참여율이 30%에도 못 미치며, 실제 재활용률은 10% 수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분담금 회피를 막기 위한 실시간 추적 시스템 도입과 재활용 품질 기준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린피스는 2024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플라스틱협약 회의에서 “플라스틱 자체의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린피스 필리핀 캠페이너 마리안 레더스마는 “선진국은 폐기물을 스스로 처리할 기술과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으로 떠넘기고 있다”며, 생산 단계에서부터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쓰레기 수거자(Waste Pickers)’에 대한 제도적 보호도 요구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정부의 공식 수거 시스템이 부족해, 민간 수거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개발 도상국 주민들의 건강과 생계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국제 협약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제적으로는 바젤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감시 체계 강화와 폐기물 이동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요구된다. 환경운동연합은 “수출 컨테이너를 열어보면 오염된 플라스틱이 섞여 있거나, 아예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며, 수출 전 사전 검증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폐기물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을 수 없다. 한국이 진정한 자원순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폐기물의 흐름을 직시하고 그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재활용 강국’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한국 역시 폐기물 식민주의의 공범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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