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가슴과 벅찬 눈물로 서로를 감싸 안았던 1700만 촛불시민들이 세계적 권위의 에버트 인권상을 수상했다.
1925년에 설립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정치재단이라고 전해진다.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독일에서 최초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다.
에버트 상은 독일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열망을 담아 매년 세계 각지에서 인권 증진에 크게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해 온 상인데 올해 처럼 특정 단체나 개인이 아닌 한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 상이 제정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받은 상이란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세계가 칭찬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 우리 안에 전해져 온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열정
지난해 한겨울을 관통했던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나는 30년 전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렸다.
30년 전 20대에 부평의 공장지대에 숨어서 목마르게 불렀던 민주주의, 그리고 87년 신촌과 시청앞을 내달리며 최류탄 속에서 외쳤던 민주주의를 떠올렸다.

아마도...
일본 경찰의 고문때문에 퉁퉁부은 얼굴을 하고도 재판정에서 또다시 의자를 집어 던지며 일제의 만행을 꾸짖었던 유관순 열사가 우리에게 남긴,
고통받는 조국의 백성들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손가락을 자르고 스스로 죽음을 찾아 갔던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게 남긴,
4.19가 또 5.18일이 수많은 생명으로 전달해준 민주주의와 인권의 DNA를 우리 모두가 나눠 갖고 있었으리라.
87년 이후 30년, 부침의 세월을 거치면서 정치도 시민사회도 진보 또는 퇴보를 해왔지만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 나라가 더 이상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수는 없다는 각성이 다시 한번 우리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이 DNA를 깨웠으리라.
지난 겨울, 촛불군중에 꼼짝없이 갇혀 그들과 함께 흘러가는 중 어디선가 들려온 꼬마 아이의 선창에 맞춰 어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구호를 외쳐주던 모습을 보며 이 DNA가 또 우리안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에버트 재단이 우리 국민들을 칭찬하며 세계에 전하고 싶었던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되고 헌재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한 순간 우리의 이 DNA는 더 커다란 자신감을 얻고, 군중속 꼬마 아이 안에서 또 나의 30년이 지난 어느날에 다시 생생하게 살아 나겠지.
지난 겨울 촛불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