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급속충전기 확산 속 전력망 과부하 우려

  • 등록 2025.09.22 14: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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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결 과제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하다간 문제 커질 수도
스마트 충전·ESS·정책 등 전력망 문제 보완 시급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전기차(EV) 보급 확산을 위한 충전 인프라 확대가 정부와 산업계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과정에서 고려해야할 부분이 존재한다. 충전소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기존 전력망 과부하가 그것이다. 


자칫 전력망의 원활치 못한 수급으로 충전소 확대가 늦춰지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친환경 교통의 미래가 암울해질 수도 있다. 당장 불거지지 않은 문제라는 이유로 이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 늘어가는 충전소, 따라가지 못하는 전력망

2023년 11월, 인천 송도의 한 상가 주차장에서는 급속 충전기 3대가 동시에 가동되며 전체 상가가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전기 설치 당시 별도의 부하 분산 설계 없이 운영되었고, 피크 시간대에 집중된 충전 수요가 차단기를 작동시켜 전력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이후 전용 차단기 분리, 서지보호기 설치 등 개선 조치가 이뤄졌지만, 충전 인프라가 전력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드물게 발생한 사례기는 하지만 그 가능성만은 분명함을 보여준 일이었다. 이와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롯데물산 등이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3~4층에 설치를 검토했던 급속충전기 사업을 접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울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급속충전기 설치 과정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력망 공사 비용 부담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업을 중단했다는 것.


단편적으로 보면 경제적 실익이 부족해 사업을 접은 것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예비 전력 확보에 실패한 사례다. 기존 전력망이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사업비가 책정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는 대형마트와 고속도로 휴게소 등 다중이용시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기차 충전기의 전력 사용을 담보하기 위해 별도로 드는 수억 대의 한전 불입금과 전력케이블 매설 공사비 등이 충전 인프라 확대를 방해하는 일이 늘고 있다.


정부는 올해 2475억 원의 급속충전기 보조금 예산을 편성하며 충전 인프라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정작 전력망 구축을 위한 예산은 빠져 있어 생활 주변의 충전기 부족 현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국도 인근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지 확보는 쉬워도 전력 공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CPO의 부담이다.


앞으로 충전기 설치를 원하는 지자체나 사업자들이 비슷한 고민에 빠질 위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전력망은 구조적으로 충전 인프라 확산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다. 도심과 아파트 단지의 전력 설비는 오래된 경우가 많고, 특히 공동주택의 충전 인프라 설치율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수도권에 전력 소비가 집중된 반면 발전소는 지방에 편중되어 있어 지역 간 전력 불균형도 심각하다. 여기에 충전 시간 분산 정책이 미흡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공급 안정성도 위협받고 있다.


이런 구조가 전기차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급속 충전기는 단시간에 수십 kW의 전력을 소모한다. 대규모 충전소가 특정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가동되면, 지역 전력망은 단숨에 과부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노후화된 배전망이나 용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정전이나 설비 손상, 전력 품질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퇴근 시간대나 야간처럼 특정 시간에 충전 수요가 몰리면 전력망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으며, 충전기의 특성상 고조파나 전압 변동이 발생해 전력 품질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다.


◆ 한국 전력망의 구조적 취약성 해소 뒤따라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전기차 보급에 발목을 잡히는 일은 해외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국가들도 전력망 과부하 문제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전기차 비중이 50%를 넘어서며 야간 요금 차등제를 도입해 부하를 완화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변압기 교체가 필요할 정도로 로컬 인프라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중국은 급속 충전소가 집중된 지역에서 전력 공급 지연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국가 차원의 전력망 확충과 태양광 연계 ESS(에너지저장장치) 설치가 확산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V2G(Vehicle to Grid) 기술을 활용해 전기차를 이동식 배터리로 활용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영국은 2024년부터 V2G 기반 충전소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독일은 충전기 설치 시 전력망 영향 평가를 의무화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충전소에 ESS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충전 인프라 확대와 함께 전력망 보강 및 스마트 기술 도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수요 반응형(DR) 충전기를 활용하면 피크 시간대의 충전량을 조절하고 시간대를 분산시킬 수 있다. AI 기반 스마트 충전 시스템은 전력 수요, 가격, 배터리 상태를 자동으로 최적화해 전력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충전소에 에너지 저장장치(ESS)를 설치하면, 저장된 전력을 활용해 전력망의 부하를 완화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는 변압기 용량 증설을 의무화하고, 주차장 ESS 설치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 인근에 초급속 충전 허브를 구축하고,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에 활용하는 V2G 기술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한 대안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 대 보급을 목표로 123만 기의 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며, 이 중 14만 5000기를 급속충전기로 채울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전국 급속충전기 수는 3만 2405기에 불과해, 향후 7년간 매년 1만 6000기 이상을 보급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목표지만 설령 이것이 이뤄진다 해도 전력망에 대한 고민은 남을 것이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데이터상으로는 전기차 50% 보급이 전체 국가 전력 사용량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전체적으로 판단하면 그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지역별 부하 관리를 못하면 국지적 정전이나 설비 파손 위험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전기차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릴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안정적인 전기차 확대를 생각한다면 스마트 충전, 로컬망 강화, 재생에너지 연계가 동시에 추진되어야만 한다. 그를 통해 전기차 시장의 지속적인 확대를 끌어가야 할 것이다. 



손영남 기자 son361@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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