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키고 돈도 벌고… 탄소크레딧 시장이 뜬다

  • 등록 2025.09.20 13: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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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탄소.. ESG 시대의 새로운 경제 생태계
정부·기업·지방이 함께 만드는 ‘자발적 탄소시장’의 확산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탄소중립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인식이다.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때론 그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탄소크레딧이다. 


탄소크레딧(Carbon Credit)은 기업이나 개인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인 실적을 인증받아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환경 화폐’다. 예를 들어, 숲을 조성하거나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면 그만큼의 감축량을 크레딧으로 발행해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 이 시장은 ‘자발적 탄소시장’이라고도 불리며, ESG 경영과 넷제로 목표가 확산되면서 급속도로 팽창 중이다.


◆ 글로벌 흐름과 국내 대응, 탄소가 자산이 되는 시대

얼마 전만 해도 생소했던 탄소크레딧이 이제는 기업의 수익 모델이 되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 되는 시대. 탄소를 줄이는 만큼 수익이 따라오는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제 기업에 있어 탄소크레딧은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기업의 수익 구조를 바꾸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테슬라다. CNBC에 따르면, 테슬라는 2024년 1분기에만 약 28억 달러(약 3조 7000억 원) 규모의 탄소크레딧을 판매해 전체 순이익의 40% 이상을 이 수익원에서 창출했다. 친환경 차량을 생산하는 테슬라는 경쟁사들에게 크레딧을 판매하며 자동차 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구글은 탄소크레딧의 신뢰성 문제를 의식해 전략을 수정했다. KDB미래전략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은 2024년 7월 탄소크레딧 구매를 중단하고 직접 배출 감축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부 탄소상쇄 프로젝트의 효과 과장과 그린워싱 논란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폭스바겐그룹 역시 탄소크레딧 활용보다는 직접적인 배출 감축과 자원 재활용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의 지속가능성 전략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2040년까지 전 세계 생산시설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자원 재활용 비중을 4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SK, GS에너지, 한화에너지 등 주요 기업들이 자발적 탄소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영국에서 판매한 세탁기와 건조기의 탄소 배출량을 크레딧으로 상쇄했다고 홍보했지만, 해당 크레딧의 대부분은 인도 태양광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실질적 감축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8월 14일 탄소크레딧 유관기관 및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를 신설하고, 다양한 크레딧이 거래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검·인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크레딧의 품질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하반기 중 ‘한국형 탄소크레딧 활성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 지역 실험과 글로벌 협력, 시장의 확장 가능성

이처럼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국내 탄소크레딧 시장은 민간과 지방정부, 금융기관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확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거래소(KRX)는 탄소시장 사업 부문 강화를 위해 글로벌 협력에 나섰다. 9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 최대 탄소크레딧 거래소 운영사 엑스팬시브(Xpansiv)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KRX 탄소크레딧 시장’ 개설을 공식 검토 중이다. 향후 해외 거래 플랫폼(CBL)과의 연계를 통해 유동성을 국내로 유입시키고, 아시아 최고 수준의 탄소시장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방정부도 이에 동참하며 독자적인 탄소시장 구축에 나서고 있다. 제주도는 향후 RE100 우유, RE100 감귤 등 농축산물 분야까지 탄소크레딧 대상을 확대해 지역 기반의 자발적 탄소시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지역 농가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순환형 탄소경제 모델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다.


전라남도 완도군은 해양 블루카본 자원을 활용한 해조류 탄소크레딧 시범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다시마 양식장 등에서 해조류를 수확하지 않고 유지함으로써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측정·검증하고, 이를 탄소 감축 인증량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한국수산자원공단과의 협력을 통해 인증 체계와 계량 방식을 구축하고 있으며, 향후 해양 탄소크레딧 시장 진입을 위한 기반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정책과 거래소의 글로벌 전략, 지방정부의 실험적 모델이 맞물리며, 탄소크레딧 시장은 점차 생태계의 다양성과 신뢰성을 갖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탄소크레딧 시장은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크레딧을 많이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도 높은 감축 실적과 투명한 인증 시스템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추적 기술, 고품질 크레딧 기준 강화, 보험 시장의 결합 등 다양한 혁신이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단체의 구호가 아니다.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과 거래소의 글로벌 협력, 지방정부의 실험적 모델, 기업의 전략적 참여가 맞물리며, 탄소를 줄이는 만큼 돈이 따라오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손영남 기자 son361@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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