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난민 리포트] ③ 급증하는 기후난민, 생산자 책임 원칙 필요해

  • 등록 2025.01.22 17:11:39
크게보기

온실가스 배출 초래한 당사자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


가뭄과 폭염, 산불과 홍수라는 자연의 공습으로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평생 머물러왔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기후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그런 그들을 감싸안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못한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소외되고 외면받기 십상인 기후난민들이 처한 현실과 국제사회가 보여주는 차가운 홀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기후난민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기후재난은 돌발적인 이벤트의 차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보다는 일상적인 현상에 가까워진 탓이다. 이는 곧 기후위기의 공포가 실체를 지닌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기후난민의 수가 급등한 이유다. 


호주의 국제 싱크탱크인 경제평화연구소(IEP)가 2018년 9월 발표한 생태계 위협 등록부(ETR)에 따르면 2050년까지 최소 12억 명이 이러한 위협으로 인해 이주할 수 있다고 밝힐 정도로 기후난민은 더 이상 일부 국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상황이다.


그럼에도 기후난민을 위한 범지구적인 대책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후난민은 저소득 국가나 3세대 국가의 거주민들에 해당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선진국가들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로 인식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 자국민 일 아니라는 이유로 선진국들 대응 미흡

기후난민의 처리를 위한 범지구적 해법 마련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맞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그게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까지는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건 맞다. 폐허가 되어버린 자국에서의 삶을 모색하기 어려워진 기후난민들 상당수가 유럽과 북미를 향해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밀려오면서 발생한 잡음이 그 증거다.


잦아지는 기후 재난, 그에 따른 피해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 상황은 이 문제를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자국민의 일이 아니라는 안일한 인식이 종내에는 큰 화근으로 돌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와 관련된 움직임들이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유엔과 국제기구는 기후난민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조금씩 나서고 있으며, 다양한 인도적 지원과 정책적 시도를 통해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기후난민 해법 마련에 가장 적극적인 유엔난민기구(UNHCR)는 기후 재난으로 인해 강제 이주한 사람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2050년까지 최대 10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으며, 국가별 대응 전략 수립을 돕고 있다. 또한 파리협정 이후, 선진국들은 기후 대응 기금을 조성해 개발도상국의 피해 복구와 이주민 지원을 위한 재정적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사태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난민의 법적 지위가 불확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제대로 된 법적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에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잦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 협약의 개정이나 별도 조약 제정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제도적 진전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개별 단체나 NGO 등 민간 기관들의 대응으로만 최소한의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 오염을 유발한 자가 그 피해에 대해 책임져야 마땅

기후난민들을 보살피는데 가장 적극적인 조직은 의외로 민간단체인 NGO와 시민단체들이다. 몽골에서 활동 중인 ‘푸른아시아’는 사막화 지역에 생태림을 조성하고, 이주민의 자립을 위한 에코빌리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서는 UNHCR이 압력솥과 친환경 연료를 보급해 산림 훼손을 줄이고, 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 


카메룬 미나와오 난민촌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친환경 연탄을 제작해 생계와 환경 보호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으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COP29 대응 활동을 통해 기후불평등 해소와 남반구 국가의 권리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의 NGO는 기후난민들의 삶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키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인도적인 견지에서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런 모습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후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빈번한 기후재난을 촉발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산업화 국가들 탓이지 않은가. 누구보다 앞서 윤리적·정치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이들의 무신경함을 꾸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모두가 알 듯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은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일본 등 산업화된 국가 및 일부 신흥국에서 발생했다. 1850년부터 2021년까지의 누적 CO₂ 배출량을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국가들이 글로벌 온난화의 주범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로 인한 기후변동이 불러온 것이 바로 기후난민을 양산케 한 주범이다. 이 와중에 책임 소재를 따져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굳이 책임을 따지면 이들 국가의 책임임이 분명하다. 


방글라데시, 투발루, 키리바시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극히 적은 국가들이 해수면 상승, 홍수, 가뭄 등의 기후재난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지금이 정상적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잘못을 저지른 이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와 관련된 개념이 바로 생산자 책임 원칙이다. 환경 분야에서 활용되는 생산자 책임 원칙은 오염을 유발한 자가 그 피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폐기물 처리, 산업 오염 등에서 적용되어 왔으며, 이제는 기후난민 문제에도 확대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지적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난민 문제는 단순한 자연재해의 결과가 아니다. 산업화의 이익을 누린 국가들이, 그 대가로 발생한 재난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려야 한다는 정치적·윤리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향후 국제사회가 어떤 법적 틀과 연대를 통해 이들을 보호할지, 그 선택은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정의’를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손영남 기자 son361@biznews.or.kr
Copyright Biznews. All rights reserved.

PC버전으로 보기

회사명 : 주식회사 지식품앗이 | 사업자 등록번호 : 214-88-73852 ㅣ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아04803ㅣ등록일 : 2017.10.26ㅣ발행일 : 2017년 11월 5일 제호 : 산업경제뉴스 ㅣ발행인 : 양학섭ㅣ편집인 : 민경종 주소 : 03443 서울 은평구 증산로17길 43-1, 제이제이한성B/D B1 (신사동) ㅣ 전화번호 : 070-4895-4690 Copyright Biz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