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난민 리포트] ②법의 우산 아래서 젖어가는 기후난민, 이대로 좋은가

  • 등록 2025.01.14 17: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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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차 외면하는 기후난민, 표류 시간 연장 초래할 뿐



가뭄과 폭염, 산불과 홍수라는 자연의 공습으로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평생 머물러왔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기후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그런 그들을 감싸안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못한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소외되고 외면받기 십상인 기후난민들이 처한 현실과 국제사회가 보여주는 차가운 홀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기후난민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법이 지닌 최대의 맹점은 스스로가 규정한 범위 밖의 일에 대해서는 좀처럼 온정을 베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침해를 당해도 법의 우산 밖에 서있는 존재라면 그를 구제해줄 그 어떤 의무도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다. 언뜻 불합리해보이지만 그것이 곧 법이다. 


기후난민들만큼 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모든 종류의 난민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국제법이 기후난민을 난민이 아닌 존재로 취급하는 통에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그들의 유랑길은 길어만 간다. 그 걸음을 멈추게 할 법은 여전히 요원하다. 


◆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인 만큼 난민 자격 부여 못해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만큼 ‘기후난민’이라는 용어 역시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기후난민의 공식적인 법제화는 요원한 게 사실이다. 최근 기후난민의 처우 개선과 관련된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발견되는 지금도 상황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난민으로서의 위치를 점하려면 정치적 박해, 인종, 종교, 국적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발상이 개선되지 않는 한 현 상황의 고착화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후난민들의 부유는 계속된다. 


방글라데시의 해안 지역 주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농지를 잃고 도시로 몰리고 있으며, 사헬 지역의 주민들은 사막화로 인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국경을 넘는다. 태평양의 섬 국가 투발루와 키리바시는 국가 자체가 침수될 위기 속에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는 삶을 이어간다.


마치 그들의 존재가 투명인간인 듯 보이기까지 할 정도지만 그들은 난민이 아닌 ‘기후 이주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왜 그런 걸까. 기후변화는 자연적 요인이라는 이유다. 의도된 박해가 아닌 자연적인 변동성까지 고려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를 접하고 나면 기막힘을 넘어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기후난민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긴 하겠지만, 법적 구속력 있는 보호 체계는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논쟁이 2014년 뉴질랜드에서 불거졌다. 


키리바시 출신의 이오아네 테이티오타가 기후난민 지위를 주장하며 망명을 신청했지만 뉴질랜드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경론자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그는 결국 강제 송환이라는 카드를 받아들어야 했다.


◆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기후난민법 제정 두고 논쟁 격화

기후난민의 법적 지위를 두고 격렬한 찬반을 이끌어낸 이 사건은 결국 국제 사회의 결정을 촉구하는 시발점이 된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20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기후위기로 인한 송환은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사실상 기후난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결정을 이끌어내기까지 했지만 그것이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기후난민을 명시적으로 보호하는 국제법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후난민을 법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 난민협약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국제 협약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난민의 정의를 확대할 경우, 수용국의 부담이 커지고 정치적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잦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기후난민과 관련된 국제법을 제정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갈수록 기후난민은 늘어간다. 더 이상 이를 법적 테두리 밖으로 방치해선 안 될 정도의 수준이다. 이에 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위해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있다.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기준의 설정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주의 직접적인 원인이 기후 변화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선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논란의 여지를 제거하고 기후난민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발적인 이주와 강제적인 이주의 경계 구축도 시급하다. 자발적인 이주까지 포함시킨다면 그는 난민의 기본적 개념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호 대상에 국내 이주자들까지 포함시켜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오아네 테이티오타 사례처럼 자국으로의 송환에 따른 인권 침해와는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기후 난민을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기준들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는다면, 기후난민의 법적 정의는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기후난민의 인권을 분명하게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적 논쟁보다 먼저 고려해야할 것이 존재한다. 바로 윤리적 책임의 문제다. 법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자국민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이유로 기후난민을 외면하는 순간에도 수많은 기후난민들의 삶은 피폐해져간다. 때문에 유엔과 국제기구는 이주 지원 정책 등 임시 보호 제도를 가동하고 있지만 그게 본질적인 대응책일 수는 없다. 


기후난민을 위한 법적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지구적인 인식의 변화인 때문이다. 실질적인 구제 방안 마련으로 기후난민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최소한의 권리인 동시에 필수적인 권한이기 때문이다. 



손영남 기자 son361@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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