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불확실한 대내외 변수로 인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당장 오는 9월 기한인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UN 제출조차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NDC는 각국이 향후 10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구체적으로 설정한 계획으로, 정부는 올해 9월 안에 2035 NDC를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아직 4달 정도가 남았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국제적 흐름에 맞춰 보다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은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정부는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정하며 일부 목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지만 이것이 사태 해결을 이끄는 정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2월에 제출키로 한 2035 NDC를 9월에 제출하는 것만 봐도 현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에 해당하는 국가가 우리뿐인 것은 아니다. 영국, UAE 등 10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2월 기한을 9월로 미루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발걸음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룰 수 없는 것이 탄소중립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낙관적이지 못하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 탓에 에너지 감축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야심차게 시도했던 태양광 보급도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면서 목표 상향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조기 대선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래저래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 현실적 한계 직면한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즉 NDC는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5년마다 이를 갱신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가별 자율성이 주어진 만큼 강압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목표 수준을 강화하는 진전의 원칙(Progression over time)을 나열한 파리협정 제 4조에 따라 이전보다는 상향된 수준을 제시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를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2035 NDC를 기존 2030 NDC보다 강화된 수준으로 설정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당장 2030 NDC의 달성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상회하는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비관론조차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 현황과 주요 쟁점’ 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2035 NDC가 파리협정의 '진전의 원칙'에 따라 기존 2030 NDC보다 목표 수준을 강화해야 하지만,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하는 2030 NDC의 달성 전망조차 불투명한 실정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하고 나섰다.
현 상태에서 2030 NDC를 달성하려면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환·산업·수송부문의 목표 달성이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흡수·제거 부문을 제외한 이 세 부문은 2018년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82%, 2030년 전체 감축 목표량의 82%를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이 부문에서의 목표 달성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2023년 NDC 부문별 이행실적 [자료=국회예산정책처]](http://www.biznews.or.kr/data/photos/20250519/art_17466004374827_07d290.jpg)
문제는 산업을 제외한 전환, 수송부문에서의 목표 달성이 생각 외로 부진하다는 데 있다. NDC를 초과 달성하고 있는 2023년에도 전환, 수송부문은 목표 대비 각각 1.9백만톤, 1.2백만톤 초과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추가감축량 1950만톤 중 산업부문이 1880만톤을 차지하며 목표 달성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결국 관건은 전환, 수송 부문의 역할 분담에 달려있음을 고려한다면 향후 전망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환 부문의 경우, 탈탄소화(석탄·LNG 축소)를 가속화하기 위한 원전·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지만 물리적인 한계로 2035 NDC 목표 상향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시 2030 NDC 미달성 우려에 따라 재생에너지(태양광) 보급 전망을 추가 상향했지만, 기존 목표가 너무 높아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원자력은 2030 NDC 전망 시 28기의 원전(설계수명 종료 포함)이 중단 없이 평균 80% 이상 가동률로 상업운전을 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점 역시 불만족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전력 계통망 포화 및 이격거리 규제로 인한 태양광 보급 둔화 역시 해결해야할 과제다. 소규모 태양광이 경제성과 입지여건이 양호한 호남지역에 집중되면서 송·배전설비 부족으로 인한 계통연계 지연이 지속·가중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즉각적인 반등은 어렵지 않겠냐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이밖에 원전의 녹색분류체계 편입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수송 부문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전기차 수요 감소와 인센티브 축소로 무공해차 보급 목표 달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부터 국내 전기차 시장이 주요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하는 시점이니만큼 2030년 친환경차 보급 목표는 필연적으로 수정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정부는 수송부문에서의 감축량을 충당하기 위해 지능형 교통시스템 도입, 자율차 확대 등 교통정책을 통한 감축 비중 확대를 고려하고 있지만 실질 효과는 장담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 대선 결과 따라 주요 환경정책 변화 불가피
구조적인 문제만이 전부는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 말미에 탄소중립 정책 변화를 이끌 요인으로 내달 치러질 대선을 언급한 것이 그것. 이로 인한 혼란이 가중될 경우, UN 재권고 기한 준수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탄소중립이라는 가치는 단순히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가 아닌, 범지구적인 과제인 만큼 그의 필요성은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변화는 따르게 마련이다.
현 정부와 지난 정부가 보여준 방향성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목표치를 26.3%에서 40%로 대폭 상향한 2030 NDC의 발안자는 문재인 정부였다. 능동적인 기후 변화 대응과 국제적 책임 준수에 입각한 판단이었다. 이를 두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라는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그 의의 자체만은 명확했다.
반면 2035 NDC 수립의 책임을 맡은 윤석열 정부는 목표치를 부분 하향시킴으로써 국내 산업계의 부담 경감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낮춘 것이 그 증거다.
이렇듯 큰 틀에서의 차이를 보인 두 정부의 대처에서 보듯, 향후 들어서는 정권 역시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아직 최종 승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정책 변화 추이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 것만은 분명하다.
환경부는 그간 각 부처에 흩어진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관련 정책들을 한군데로 모아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로 기동할 기후환경부로의 확대 개편을 주장해왔다. 현 상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이지만 이조차도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현 대선 정국이다.
누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든 변화는 불가피하다. 벌써부터 '2040 탈석탄', '에너지고속도로', ‘기후에너지부’, 플랙시트(플라스틱 엑시트) 프로젝트, 국제 탄소시장 허브 도약 공약 등 환경과 관련된 공약들이 춤을 추고 있다. 구체화 정도와 타당성 검토 과정이 뒤따른 후에라야 실현 가능해질 일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범지구적 목표를 적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 주도의 계획과 투자를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한국의 탄소중립 이행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낮고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확대 속도도 기대보다 느려지고 있으며, 전력망 확충과 주민 수용성 문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국제적 흐름에 맞춰 보다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차기 정부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