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적 연료로 평가받던 LNG가 규제 환경 속에서 비용 절감 효과를 확보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그린피스]](http://www.biznews.or.kr/data/photos/20251251/art_17659522613878_497184.png)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유럽연합의 저탄소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해운 연료 시장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싱가포르가 로테르담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바이오벙커링 허브로 부상하는 사이, 한국 해운업계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 항만 인프라와 선사들의 연료 전략은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조선·정유·정부 모두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FuelEU·ETS 시행으로 드롭인 연료 효율적 대응책으로 부상
EU의 FuelEU Maritime(선박 연료 온실가스 배출 강도 감축 의무 규정)과 EU ETS(배출권거래제) 시행은 선박들이 드롭인(drop-in) 방식의 바이오연료를 채택하도록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드롭인 바이오연료는 휘발유, 디젤, 벙커유 등 기존 석유계 연료와 화학적으로 거의 동일해서, 엔진이나 인프라를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연료로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지금, 가장 효율적인 연료로 취급받고 있다. 저탄소 전환을 선도하는 글로벌 벙커 트레이더인 덴마크의 KPI OceanConnect는 FuelEU만으로 연간 60만~70만 톤의 바이오벙커 수요가 늘었다고 추정할 만큼 바이오연료의 성장세는 도드라진다.
EU의 규제 강화로 드롭인 바이오연료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RED III(EU 재생에너지 지침 3차 개정판)의 각국 도입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며 성장세를 제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2026년부터 ERU(Emission Reduction Units, 배출감축단위)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며, 이는 공급자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바이오벙커의 핵심 원료인 UCOME(폐식용유 기반 바이오디젤)을 화석연료로 분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반면 독일은 국제 해운을 RED III 적용에서 제외했다. KPI OceanConnect의 소렌센 글로벌 대체연료 총괄은 “RED III의 효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시장은 불확실성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은 싱가포르가 쥐고 있다. 11월 기준 B30(바이오연료 30% 혼합) 가격은 싱가포르 709달러/톤, 로테르담 756달러/톤으로 차이가 뚜렷하다. 싱가포르는 가격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앞세워 아시아-유럽 항로 선사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ARA(Amsterdam–Rotterdam–Antwerp) 지역은 물류망과 저장·혼합 인프라의 깊이로 여전히 EU 내 핵심 허브로 남아 있으며,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터키도 공급망을 확장하고 있다.
◆ 그린 메탄올, 생산량 격차와 높은 가격이 걸림돌
이처럼 바이오연료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체 연료의 또 다른 축인 그린 메탄올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글로벌 선박 중개·컨설팅 회사 브로커 브래머는 현재 메탄올 추진 선박이 87척에 그치그린 메탄올 사용의 대중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공급과 수요의 저울이 균등하지 않은 때문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사를 둔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인 MPC 컨테이너십스는 그린 메탄올 생산량이 연간 220만 톤에 불과해 2040년 예상 수요 6천만 톤과는 큰 격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린 메탄올은 MGO(해상용 경유)보다 세 배 이상 비싸 선사들이 이를 사용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크다.

비용 부담이 큰 메탄올과 달리 LNG와 Bio-LNG는 규제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S&P Global은 “더 엄격해진 ETS 규정이 LNG 바이오벙커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에는 과도기적 연료로 평가받던 LNG가 규제 환경 속에서 비용 절감 효과를 확보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Bio-LNG는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인정받아 선사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다. 2026년 이후 EU의 온실가스 규제가 강화되면 해상 LNG와 바이오연료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흐름과 달리 한국은 준비가 더딘 상황이다. 부산·울산·여수 등 주요 항만은 바이오벙커링 저장·혼합·품질관리 시스템과 LNG·Bio-LNG 상업 공급 라인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한-EU 항로를 운항하는 국적·외국적 선사 모두 항로별 최적 혼합비와 기항지 조달 조합을 재설계해야 하지만, UCOME의 규제 지위 변화와 가격 변동성이 전략 수립을 어렵게 한다.
조선 3사는 메탄올·LNG 대응 신조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으나, 국내 선사들의 발주 의지는 높은 연료비와 조달 불확실성 때문에 이 또한 제한적이다. 정부 역시 국제 규제와의 상호인정 체계를 조기에 정비하지 못하면, 국내 감축 노력이 EU에서의 비용 절감·규제 혜택으로 연결되지 않는 단절이 발생할 수 있다.
국내 해운업계는 강화되는 EU 규제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활용하기에 따라선 기회의 장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드롭인은 비용과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실무적 해법으로 얼마든지 활용가능하고 LNG와 메탄올은 중장기 경쟁력의 분기점을 점하는 도구로 사용가능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