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이른바 ‘플로깅’이 기업 ESG 경영의 대표적 실천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기업들의 참여가 늘면서 상징적인 환경 캠페인으로 자리잡는 추세지만 그의 실질성을 둘러싼 의문도 여전하다.
참된 환경 운동에 대한 의지보다는 회사 이미지 구축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실제로 몇몇 기업은 자사 제품으로 인한 환경 피해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며, 플로깅을 ‘그린워싱’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 마케팅 효과에 치중하느라 환경 운동은 뒷전
지난해 9월, 글로벌 담배회사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은 환경재단과 공동으로 서울시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해피 쓰담 데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쓰레기 없는 하루를 축하하는 컨셉의 '해피 쓰담 데이' 캠페인은 필립모리스와 환경재단이 4년째 진행 중인 '쓰담서울'(담배꽁초 플로깅) 캠페인의 일환이다.
플로깅이라는 말에서 짐작하듯 이 행사는 시민들과 함께 꽁초를 수거하고, 휴대용 재떨이를 배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 보호의 의미를 되살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ESG 경영을 실천한다는 기업의 의지가 뚜렷이 드러난 사례지만 그의 속내를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가 이날의 행사를 “자사 제품으로 인한 환경오염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전형적인 그린워싱”이라며 날을 세운 것이 그 증거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 감시단체 STOP은 담배 제조사들이 벌이는 일련의 환경 캠페인에 대해 “담배 필터는 제조사가 설계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며, 환경오염의 근본 원인임에도 기업은 소비자 행동만을 문제 삼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이날 행사 역시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임은 분명하다.
이는 비단 담배 제조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국내 기업들 상당수가 개최하는 플로깅 행사 대부분이 보여주기식 환경 캠페인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케팅 차원의 기획이거나 혹은 일회성 전시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사의 포장지를 형상화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플로깅 행사를 개최한 한 식자재 메이커의 경우, 행사 자체보다는 오히려 행사 직후 참가자에게 주어진 기념품에 더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다. 대부분의 플로깅 행사 참여자에게 이런 식의 기념품이 주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이 행사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쁘잖아요. 사실은 이거 받으려고 쓰레기 주웠어요. 물론 의미도 좋구요.”
행사에 참가한 한 시민의 말처럼 플로깅의 참의미에 동조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기념품이 마음에 들어 참여했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두고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굿즈 중심의 참여 유도는 마케팅 효과는 뛰어나지만, 환경운동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며 “쓰레기를 줄이는 것보다 쓰레기를 주워서 보상받는 구조에 집중되면, 오히려 소비를 부추길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 수거 쓰레기 처리 과정과 재활용 여부 투명하게 공개해야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플로깅은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초반에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개인과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붐을 이끌었지만 최근에는 기업들이 행사를 주도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기업의 ESG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2020년대 초반부터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했으며, 최근에는 기업의 ESG 전략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매해 기업과 지자체, 정부 단체 등이 주관하는 플로깅 캠페인만 수백 건에 달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연 참여 인원도 수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중화되고 있지만 그 중 대부분이 단발성 행사에 머무는 경우가 잦다. 또한 행사를 통해 수거된 쓰레기의 분류·재활용 여부가 명확히 공개된 사례도 드문 탓에 행사의 의미가 희석되기 일쑤다.
이러한 결과는 플로깅이 단순한 이미지 마케팅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특히 ESG 보고서에 수거량과 참여 인원만을 강조하고, 캠페인의 지속성이나 환경적 효과에 대한 검증 없이 홍보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플로깅 자체가 기업이나 지자체의 자발적인 행사인데다 선의의 의도를 지닌 사안이니만큼 이를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를 악용한 사례가 적발된다 해도 별도의 규제를 가할 수 없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플로깅을 ESG 경영의 도구로 사용하는 빈도가 느는 만큼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플로깅이 ESG 경영의 대표 사례로 자리 잡은 만큼, 실질적인 환경 기여로 이어지기 위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수거된 쓰레기의 처리 과정과 재활용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지역 환경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캠페인의 실효성을 높이고, 수집된 쓰레기 데이터를 도시 환경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캠페인의 지속성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플로깅은 환경 실천이라기보다 마케팅에 가까울 수 있다. 기업이 진정으로 ESG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플로깅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기후위기 시대의 일상적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