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넷제로 시대의 대전제 아래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구석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석탄산업이다.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원흉으로 꼽히는 석탄산업의 몰락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과도 같다. 이에 탈석탄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와 관련된 법과 제도의 도입 역시 꾸준히 이어지면서 탈석탄 러시가 가속화되는 와중에 그로 인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점차 커지는 형편이다. 관련 산업에 기대 살아가던 지역민들이 그 대상이다. 지역경제의 중심축이었던 발전소가 사라지며, 지역사회는 심각한 충격에 직면하고 있다.
◆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 손실 막대해
지난 6월, 일부 언론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국정기획위원회에 ‘2030년 석탄산업 종료 방침’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해당 내용은 보고된 적도, 결정된 적도 없다”며 즉각 반박했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정부의 입장이 더 이치에 맞음이 분명하다.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과업임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과정이 한 순간에 이뤄지기 힘든 게 사실인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구조는 석탄을 제외하고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그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07~2023년 한국의 최대 발전원은 석탄이었다. 지난해 발전량 기준으로는 원자력 발전(32.5%)과 LNG 발전이 29.8%로, 석탄(29.4%)을 앞질렀지만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이기에 더더욱 조속한 퇴장을 점치기는 이른 게 사실이다.
물론 이는 시기의 문제라는 해석이 더 올바르다. 정부의 발표대로 2030년 석탄산업 종료는 아닐지라도 단계적인 철수가 이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관련 시설이 설치된 지역에서 이같은 징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마지막 국영 탄광인 삼척 도계광업소가 공식 폐쇄됐다. 89년간 산업시설과 가정 등에 에너지를 공급하던 역할을 마무리 지은 것. 이에 앞서 2023년 전남 화순광업소, 지난해 태백 장성광업소에 이어 도계광업소 폐광으로 국영 탄광은 한 곳도 남지 않았다. 석탄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민영 탄광인 경동상덕광업소도 2030년까지 단계적 폐쇄가 유도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퇴장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역 주민들의 원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강원연구원이 도계광업소 폐광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할 정도로 지역의 충격파는 크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경제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해 태안, 보령, 당진, 삼천포, 하동 등 주요 발전소 소재 지역에서 최대 2조 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충격이 예상되는 지역은 충남 태안군이다.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총 6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약 3,000명의 인구 유출과 11조 원 규모의 지역경제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태안군은 이를 막기 위해 충청남도와 협력해 수소·암모니아 기반의 무탄소 전원 대체시설 유치를 추진 중이다.
보령시 역시 상황은 심각하다. 5·6호기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지역 GDP는 약 1조 5,865억 원 감소할 것으로 분석되며, 지니계수 상승으로 인해 지역 간 소득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동군은 석탄발전소 폐쇄로 인해 고용 불안과 지방세 수입 급감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들 지역은 정부에 에너지 특화 산업단지 조성, 지역 일자리 전환 프로그램 마련,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 유치 등을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실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의명분에 포위된 지역사회는 실직과 경제 붕괴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들리는 지역을 묶어줄 ‘정의로운 전환’의 안전망은 존재하는 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 구호뿐인 정의로운 전환은 논란 부를 빌미 제공할 것
정부는 석탄발전 감축과 탄광 폐쇄를 ‘정의로운 전환’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강원 태백·삼척 등 탄광 지역에서는 실직자 수천 명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태백시 관계자는 “정부는 종료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산업이 사라지고 있다”며 “지역경제를 살릴 구체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식 입장과 실제 산업 구조 변화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의미다.
시급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지역민들을 안심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전국 2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석탄을 넘어서’ 네트워크는 총선 정책 제안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정부가 2030년 석탄발전소 폐쇄를 공식 선언하고, 지역별 일정과 지원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가 예측 가능한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실직자 대상 직업전환 교육과 재취업 지원, 지역 산업 다변화 전략을 포함한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별 전환기금을 조성해 주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핵심 과제로 꼽혔다.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용량에 상응하는 태양광·풍력 중심의 설비를 확대하고, 지역 주민이 발전소 운영에 참여하거나 수익을 공유하는 ‘에너지 협동조합’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은 LNG 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재검토하고, 탄소중립 목표와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고탄소 산업에 대한 환경비용을 반영하기 위해 배출권거래제의 유상할당 비율을 100%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전면 폐쇄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내건 공약이지만 구체적인 수치나 실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은 의지 표명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단체듥로선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관련 산업에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에 따른 노동자 대책은 일언반구조차 없었다”며 “1만 5,000명에 달하는 석탄발전 노동자의 고용대책 역시 함께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당연한 반발이다. 뚜렷한 형태의 정책 입안으로 노동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만 그에 관한 논의는 지지부진 그 자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탈석탄법 대부분은 석탄발전소 폐쇄 지역에 대한 지원 근거 마련과 시행계획 수립 의무화 등을 담고 있지만 법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둘러 만들어야 할 탈석탄법은 다양한 정치적 셈법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 사이에 지역민들의 애환은 갈수록 커져간다. 탈석탄의 당위는 너무도 명확하다. 그러나 그 전에 석탄 이후의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지도 않은 채 이를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도 크다.
안 그래도 더딘 재생에너지 전환이다. 단순히 기한만을 정해놓고 무턱대고 밀어붙이기 전에 탈석탄을 이룬 이후의 대책이 먼저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의 속에서도, 지역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배려와 실천이 절실하다. 탈석탄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길이 새로운 기회의 문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