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기존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야심차게 도입한 청정수소발전 의무화제도(CHPS)가 불안한 스타트로 인해 때 이른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미흡한 경제성에 따른 업계 반발을 필두로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석탄화력발전의 보조적 역할 수행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까지 야기하며 좀처럼 중심을 못 잡고 있는 것. 탄소배출 감소, 신재생 에너지 확대, 수소경제 활성화 견인이란 중차대한 역할을 해낼 걸로 기대받던 출발이 무색해진 지금, 일각에서는 제도 폐지까지 언급할 정도로 존립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
◆ 세계 최초 입찰시장 개설 취지 무색하게 목표치 11.5% 그쳐
청정수소발전 의무화제도(이하 CHPS)는 2023년 수소법을 기반으로 도입되었으며, 2024년 5월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 발전 경쟁입찰 시장이 개설된 제도다.
수소를 발전 연료로 사용해 생산된 전기를 구매·공급하는 제도인 CHPS는 제도 활성화 시 탄소 배출 감소,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정부로서도 기대가 컸다.
발전 사업자들에게 수소 시장의 수요를 확보해 줌으로써 수소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도 힘을 보탠다는 대의를 지닌 만큼 입찰 개시 물량도 6,500GWh(기가와트시)에 달했다. 6,500GWh는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의 1.1%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비슷한 규모다. 특정 발전원으로 환산하면 중소형 발전소 여러 곳의 연간 발전량에 해당할 만큼 첫 도입 규모로는 적지 않은 수준이다.
경쟁입찰을 통해 뽑힌 발전 사업자는 청정수소로 만든 전기를 2028년부터 한국전력 등에 15년 동안 고정 가격으로 판매할 자격을 갖는 만큼 사업자들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입찰에 참여한 5개 회사 중 최종 낙찰된 곳이 한전과 산업부의 암모니아 발전 기반 인프라 구축 사업에서 사업비 400억 원을 지원받은 남부발전 한 곳에 불과했던 것. 입찰에 실패한 사업자들은 수소발전입찰시장위원회가 사전에 설정한 입찰가격 상한선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배를 마신 기업들로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충격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모양새다. 성공했다 하더라도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배경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값비싼 수소연료 도입가다.
발전에 필요한 청정수소나 암모니아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곳이 없어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구조다. 주로 석탄화력발전의 탈탄소에 적용되는 블루 암모니아는 t당 700달러 이상에 유통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글로벌 블루수소 생산단가는 t당 1800~4680달러(블룸버그NEF)에 달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블루 암모니아다.
물론 이는 둘을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 타 발전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극히 떨어진다. 기존 발전을 책임지던 원자력이나 석탄, 천연액화가스와 비교하면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운 비용이 발생하는 때문이다.
더불어 안정적이지 않은 가격 동향도 문제로 지적된다. 블루 암모니아나 청정수소의 경우, 아직 발전 단계인 때문에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고, 이런 가격 불안정성이 장기 계약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얼마든지 위험 요소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500GWh의 용량 중 남부발전 1곳(750GWh)만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선뜻 성공을 장담할 수 없던 사업자들이 보수적인 제안으로 사업자 선정에 실패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올해 또 한 번 재연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 현실적 대안 모색 통해 제도 개선 박차 가해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9일, 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연간 총 3000GWh 규모의 발전물량에 대한 입찰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최종 낙찰자는 가격 지표와 비가격 지표를 고려해 11월쯤 선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대비 30%가량 줄긴 했지만 올해 역시 입찰 물량 전체를 채우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환율 연계 정산제도, 물량 차입 제도 등을 통해 높은 발전 단가의 벽을 넘지 못했던 지난해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발전사들의 사업 부담은 여전한 때문이다.
쉽사리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입찰에도 관련 기업들의 도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수반되는 사업인 탓이다. 여기서의 ‘리턴’이 반드시 상업적인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개발 초기인 수소 경제 시장을 선점하는데 있어 큰 몫을 담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때문에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여러 사업자들이 사업을 이어갈 테지만 여전히 걱정거리는 존재한다.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단지 그뿐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에서도 발견된 것처럼 비우호적인 사회적 수용성 또한 사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요소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 등 기후환경단체들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정수소발전 의무화제도(CHPS)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기후위기 대응이란 명분 아래 만들어진 CHPS가 본래 취지와 달리 석탄화력발전을 장기간 보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애당초 석탄 80%, 암모니아 20%를 사용하는 혼소발전을 청정수소 발전이라 말하는 것이 궤변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방식의 발전 시스템이 탄소중립 기조를 해칠 수 있음도 거론됐다. 조순형 충남환경운동연합 탈석탄팀장은 “충남 지역에서 암모니아 혼소가 시행될 경우, 미연소 암모니아로 인한 미세먼지 배출이 기존보다 85%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는 석탄화력발전기 4기를 새로 짓는 것과 같은 대기오염 효과로, 지역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라며 환경권 침해의 가능성을 꼬집기도 했다.
기존에 진행됐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당시에도 수차 거론된 부분이니만큼 이에 관한 대응 역시 반드시 뒤따라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앞선 예에서 보듯 일부 환경단체들과 지역 여론이 CHPS 일부 기준 폐기와 구조 개편을 촉구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관련 사업 전부의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수소 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를 이유로 초래되는 혼선과 시행착오를 최소한 줄여달라는 요구일 뿐,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
CHPS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해서 수소 경제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 수는 없다. 바꿔 말하면 수소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CHPS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기술과 경제성을 고려할 때 청정수소를 의무화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며 “재생에너지 확충과 수소 저장 기술의 발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청정수소발전이 지속가능하려면 먼저 시장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CHPS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는 건 따지고 보면 그만큼 이 제도의 가치가 뛰어남을 의미한다. 청정수소가 미래 에너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인 만큼,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은 단순하고 선명하다. 정부가 수소 생산 인프라 확대와 경제성 확보 방안을 마련한다면 CHPS의 실효성은 드라마틱하게 상승할 것이다. CHPS가 탄소중립 시대의 도전과제임을 명심하고 정부와 산업계는 하루 속히 균형점을 찾아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