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시기상조 vs 경쟁력 강화” 탄소세 도입 바라보는 두 얼굴

  • 등록 2025.05.21 09: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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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퉈 탄소세 도입하는 경쟁국들 속에서 홀로 유유자적
기존 제도만으로는 탄소중립 가치 구현 한계 분명해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국민들이 늘면서 탄소중립과 관련된 어젠다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가장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바로 탄소세다. 이의 도입을 두고 펼쳐지는 논쟁이 대선 국면을 맞아 한층 더 강도를 높이고 있다. 


섣불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팽팽하게 기운 찬반양론 덕에 탄소세 도입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게 문제다. 이와 연계된 정책들과 맞물려 있어 가부간 향방이 결정되어야 하는 때문이다. 


어느 한쪽도 바라지 않는 결말이지만 당분간은 지금의 고착 상황이 지속될 확률이 크다. 탄소세 도입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기업들의 경제적 부담이나 사회적 합의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근거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필수적인 사안인 만큼 조속한 채택을 바라는 목소리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회적 수용성 확보와 기업 경쟁력 저하 요인 제거가 관건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 속에서 40여개국이 탄소세를 도입하고 있고 탈탄소 흐름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인상을 보여온 트럼프 美 정부조차도 탄소세 도입을 검토할 정도로 이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경우, 탄소중립을 강화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이 아니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대체적인 흐름은 탄소세 도입으로 향하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우리 역시 이런 흐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시작은 이명박 정부로 거슬러간다.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제정 당시 탄소세 도입이 거론된 것이 발단이다. 물론 당시엔 찻잔 속의 태풍 수준에 그친 관계로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이후 탄소세 도입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 속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진 수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탄소세 도입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제대로 된 성과를 구현해내지 못한 건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인식이 이를 수용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데 기인한다. 우리의 삶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특정 이해 집단들만의 슬로건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던 탓이다. 


이유가 없던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탄소세는 이전에 없던 종류의 세금이다. 따라서 탄소세 도입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는다는 뜻이다 보니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시도됐던 탄소세 도입이 하나같이 불발로 끝난 이유 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증세라서 싫다는 이유로 탄소중립의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지 않는 기류가 조성된 것. 탄소중립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과제라는 인식이 갈수록 커져가는 상황이다. ‘기후정치바람’이 지난달 7~30일 시민 44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2%가 탄소세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는 단지 일반 대중의 정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탄소세 도입으로 가장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할 기업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여론은 탄소세 도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할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13일 펴낸 ‘국내 기업의 탄소중립 대응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국내 탄소 배출량 상위 1000개 기업의 69.6%가 탄소중립 대응이 ‘자사의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을 정도로 기업들 역시 탄소중립과 기업 경쟁력 사이의 불가분성을 인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즉각적인 탄소세 도입 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보여왔던 소극적 자세에서 한층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답은 하나다. 산업 경쟁력을 저해하지 않고 사회적 수용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구축된다면 지지부진했던 탄소세 도입 움직임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 탄소세 도입 불가피해.. 배출권 거래제로는 한계 뚜렷

지난 13일, 국회예산정책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세 역할 및 시사점: 유럽국가의 운영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발표하며 탄소세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만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수송 및 건물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제한적이므로 탄소세를 보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실효성이 지극히 낮은 때문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배출권거래제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추가적인 수단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환(발전)·산업 부문은 감축량에서 배출권거래제가 담당하는 비율은 각각 96.6%, 88.9%로 높은 수준이지만 수송과 건물 부문은 각각 9.0%, 4.5%로 배출권거래제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배출권 거래제도는 여러 지점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현재 배출권 거래제도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크게 3가지다. 배출권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시장 활성화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높은 무상할당 비율로 인해 배출권 시장의 공급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 및 연기금 등의 참여가 제한적이어서 거래 활성화가 어려운 점 역시 배출권 거래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악평을 받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탄소세가 새로운 탄소감축 유인책으로 부상한 이유의 한 단면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탄소세와 배출권을 함꼐 운영하는 국가는 총 21개다. 이들은 탄소세를 통해 배출권거래제가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보완하거나, 탄소가격을 강화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양자를 조화롭게 적응해 탄소감축의 효율성을 꾀한다는 의미다.


조만간 새롭게 등장할 신정부는 자신들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의 40% 수준으로 줄이기로 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고, 올해 안에 2035년 목표를 추가로 제시해야 하는 급박한 입장에 처해있다. 탄소세 도입이 무엇보다 필요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돌아가는 형세는 그리 여유롭지 않다는 평이다.


◆ 탄소세 도입에 관한 입장 밝힌 후보 전무하다시피 해

6월 3일, 치러질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었건 탄소중립 시대를 선도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는 것은 동일하다. 남겨진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그에 관한 정책을 조율하고 사전에 준비하는 과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를 짐작케 하는 것이 바로 각 당의 공약이다. 정치, 사회, 경제를 망라하는 공약이 쏟아진 가운데 에너지 정책 부문의 공약은 탄소중립을 선도하기에 부족함이 있지 않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탄소세 도입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이가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탄소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차기 정부의 수장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라고 간주하면 아예 없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후보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는 탄소세 도입을 공약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탄소세 관련 내용이 빠진 것이 이채롭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질 지도 모르는 증세 논란을 잠재우고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김문수 후보나 이준석 후보는 아예 언급조차 없는 상황인 것에 비하면 그나마 발전적이지만 결국 당장의 탄소세 도입은 쉽지 않다는 입장인 만큼 찬성론자들의 원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여도 쉽지 않은 게 탄소세 도입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탄소세 관련 법안들이 회기 내내 표류하다 좌초할 만큼 사회적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이 탄소세 도입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 바로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2014년 탄소세를 도입한 이후, 지속적인 세율 인상을 꾀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이 증가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결국 ‘노란 조끼 운동’으로 불리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고 이에 탄소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기까지 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긴 해도 프랑스의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자명하다. 우리 역시 얼마든지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증세 부담을 이유로 공약에서 탄소세 도입을 제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기업들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위는 인정하지만 탄소세 도입은 결국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요소이기 때문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탄소세가 기업의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군에서는 탄소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어 관련 기업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재정이 허술한 중소기업들은 탄소세 도입이 경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초기 낮은 세율에서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반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못한 탄소세 도입은 이래저래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시간을 갖고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모범답안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금이지만 그러기엔 국제 정세가 너무 촉박하다. 산업 구조 변화와 사회적 합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정책인 것도 맞고 앞서 파열음을 경험한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탄소세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상책일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동안 한발 두발 뒤처지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좀벌레가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한다면 과감한 결단의 필요성은 더더욱 커진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손영남 기자 son361@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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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경제뉴스| 등록정보:서울,아04803ㅣ등록일:2017.10.26ㅣ발행일:2017년 11월 5일 발행인 : 주식회사 지식품앗이 양학섭ㅣ편집인 : 민경종 주소 : 03443 서울 은평구 증산로17길 43-1, 제이제이한성B/D B1층 (신사동) ㅣ 전화번호:070-4895-4690 Copyright Biz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