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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못오게 막는 '주총 꼼수' 사라지나

[취재수첩] 슈퍼주총데이, 입장 저지, 모니터 주총 등 없어질까



[산업경제뉴스=문성희 기자] 언제부터인가 주주총회장에 주주들이 들어 가지 못한다. 

주주총회는 오전 10시에 개최되지만 아침 8시면 이미 주총회장이 가득차 있어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회사 직원들이 서둘러 출근해 자리를 메꾸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회사측은 30분 전에 도착한 주주들 마저도 빈 자리가 없다며 총회장 진입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친절하게(?) 총회장 밖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과 다과가 차려져 있는 별도 좌석으로 안내한다. 주주는 주총장 안으로 고개도 들이밀어 보지 못한다.  

모 전자회사는 건물의 가장 윗층에 있는 강당에서 주총이 진행되는데 그날은 10개가 넘는 엘리베이터가 가동이 중지되고 단 1기만 운행된다. 그 엘리베이터도 내부 직원용이라며 거구의 장정들이 일반주주 탑승을 막고 서있다. 

그리고 주주들을 1층 로비 구석에 임시로 마련된 주주 휴계실로 안내한다. 모니터 3, 4개가 설치되어 주총이 중계되고 친절한 여성 안내원들이 다과와 주총 선물을 나눠준다. 주주총회장 출입문도 구경 못하고 돌아서 나와야 한다.

본 기자도 주총을 취재하러 갔다가 거구의 검은 정장들에게 막혀 주총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목소리를 높여도 소용이 없어 평소 잘아는 홍보부 간부를 불러 내 그의 안내를 받은 후에야 겨우 주총장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주총이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지난 1년 간의 사업내용을 승인 받고 향후 1년의 사업계획을 보고하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주총도 목격했다. 회사 매출이 십조원이 넘고 직원이 수만 명인 회사였다.

거의 모든 주총의안은 '배포된 사업보고서로 갈음'되고 의장의 동의 요청에 일사분란하게 주주의 제청이 터져 나온다. 중국이나 북한 등 공산국가의 전당대회를 보는 듯해 순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 슈퍼주총데이, 원거리 주총...시간과 장소 선정도 꼼수 난무

이러한 무대포식 대응외에 얄팍한 꼼수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국내 기업들의 주총 개최일과 시간을 보면 대부분의 주총이 법정 마감기한인 3월말의 1, 2주 전 금요일 오전 9시에 맞춰져 있다. 특히 같은 그룹 계열사들은 일괄적으로 한날한시에 주총일이 잡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때에 따라서는 동일 업종의 회사들 마저 한날한시에 주총을 개최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이렇게 기한에 임박해 주총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기업과 재계는 사업보고서를 꼼꼼하게 만드느라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왜 금요일 오전 9시 인지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시간 뿐만이 아니고 장소도 주주들이 참석하기 힘들게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날한시에 치르면서 한 회사는 서울 본사에서 다른 계열사는 경기도의 지점에서 개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널찍한 자기 대강당을 놔두고 굳이 교통편이 불편한 한적한 곳의 남의 강당을 빌리기도 한다. 지방에 공장이 있는 회사는 서울에 본사가 있는데도 지방에서 주총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회사는 현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무대포식 행태와 얄팍한 꼼수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재계에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고 업계는 토로한다.

당연히 주총장 앞이나 1층 로비, 건물 밖에서는 밀려난 주주들의 항의 목소리가 커지고 다툼이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로 검은 정장의 청년들이 주주들을 힘으로 밀어 내지만 주주가 땅바닥에 드러누울 정도로 항의가 거세지면 나이 지긋한 분이 나와 그를 어디론가 모셔간다. 본 기자도 쫓아가 봤는데 중도에서 검은 정장들에게 막혀 결국 놓쳐버렸다. 기자도 땅바닥에 드러누워야 했을까.

■ SK그룹, 계열사 주총 날짜 분산 '주주 친화 경영' 선언

SK주식회사가 지난 18일,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요 회사의 주주총회를 각각 다른 일자와 시간에 분산해서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위 '수퍼주총데이'라고 불리던 주총 몰아넣기의 폐단을 줄여 주주들의 주총참석권과 의결권, 나아가 주주들의 감시기능 등을 보호하겠다는 설명이다. 

SK측은 '주주친화 경영' 취지라며 "복수의 회사가 동시에 주총을 열어 주주 참여가 제한되는 기존 ‘수퍼주총데이’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주주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SK는 '전자투표제도'도 도입해 이번 정기주총에 적용키로 했다. SK 주주들은 주총 참석이 보다 쉬워졌으며 해외에 있거나 바쁜 일정으로 총회 출석이 어려워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일반주주들과 정부당국은 SK의 이러한 행보를 모범사례로 평가 하며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재계와 기업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과거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높았을 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질문과 의사진행발언으로 주총 시간이 몇 시간씩 지연되고 의장으로 나섰던 그룹총수와 대표들이 곤혹을 치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많은 기업들이 최순실 사태 등 정경유착 사건에 연루돼있고 사회적으로도 그 어느때보다 시민의식이 높아져서 주총 진행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있다.

재계에 따르면 회사마다 정기주총을 앞두고 경영실적을 챙기기 보다 주총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주주와 정부의 바램대로 SK의 정책에 동참할 수 있을지, 또 단순히 날짜만 분산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난무했던 '주총장 입장 저지', '모니터 주총', '원거리 주총' 등 관행으로 굳어진 주주총회 꼼수들을 중단하고 당당하게 주주들을 마주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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